
남녀노소라는 말 언제 들어보셨나요? 날씨 좋은 어느 날의 한강공원 취재 뉴스에서 들어본 것도 같습니다. 언뜻 진부한 표현 같지만, 남녀노소가 섞여 이용하는 공간이 어디 있었는지 생각해 보면 퍼뜩 떠오르진 않습니다. 저희 집은 동묘 근처로 연령대 높은 어르신들이 북적이고, 직장이 있는 성수동은 멋지게 차려입은 여행객으로 북적입니다. 비슷한 집단끼리의 공감대가 형성되는 동네는 특색있고 재미있지만, 그 특색이라는 것이 누군가를 배제하고 있진 않은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언젠가부터 남녀노소가 모두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발견하면 기분이 좋습니다. 봄입니다. 봄은 각종 페스티벌의 티켓팅이 시작되는 계절입니다. 페스티벌 덕후로서 진짜 ‘남녀노소’ 누구나 환영받는다는 감각을 느끼게 해준 페스티벌 두 곳을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관객의 연령대는 1080,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은 1년에 단 3일, 강원도 철원에서 개최되는 음악 페스티벌로 ‘음악을 통해 정치·경제·이념을 초월하고 자유와 평화를 경험하자’는 취지로 2018년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에서 가장 유명한 건 뭘까요? 화려한 라인업도 무대도 아닙니다. 바로 ‘분비자’입니다. 분수와 이비자(클럽과 파티를 즐길 수 있는 EDM의 성지로 불리는 스페인의 섬)의 합성어지요.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인스타그램 분비자 영상 캡쳐
보통의 뮤직 페스티벌은 티켓을 구매한 사람만 입장 할수 있는 구역내에서만 페스티벌을 엽니다. 그러나 분비자는 메인 무대 구역 바깥, 철원 관광 정보 센터 광장 분수대 앞에 마련됩니다. 이곳에서는 아이들도 지역 어르신도 모두 디제잉 공연을 즐기며 춤을 출 수 있어요. 춤 출 수 있다고 해서 모두 춤을 출까요? 분비자에서는 춥니다. 어르신들 특유의 춤사위에 젊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어요. (궁금하시면 이 영상을 한 번 보세요!)
분비자에는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기획팀의 철학이 담겨있습니다. 큰 행사를 이유로 철원군민의 공간을 함부로 빼앗지 않습니다. 철원군민은 페스티벌 티켓 무료 구매가 가능한데도, 티켓 없이도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남겨두어요. 덕분에 분수대 주변의 식당들은 이 기간에 페스티벌에 어울리는 음식을 마련하고 대목을 맞습니다. 광장의 분수대는 기존 지역사람들과 페스티벌에 놀러온 외지인이 어울릴 수 있는 완충 공간이 됩니다. 지역민과 외지인이 서로를 불청객으로 여기지 않고, 지역민이 외지인을 환영하는 주체가 됩니다.

한탄강가에서 노는 사람들
많은 뮤직 페스티벌의 분위기는 쉽게 과열되곤 합니다. 아이들과 함께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일 때도 있죠. 하지만 DMZ 뮤직 페스티벌에는 열기와 여유가 공존해요. 한탄강을 따라 보트를 타기도 하고, 연못에서 물장구치기도 가능합니다. 머리를 땋아주는 부스도 있고 모여서 뜨개를 하는 부스도 있어요.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키즈존도 있고요. 그래서 아이를 데리고 피크닉 겸 페스티벌을 즐기러 온 관객도 많습니다. (작년 페스티벌에서 놀고 간 아이들 사진을 한 번 보세요.)
최근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총감독 김미소님은 인터뷰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페스티벌에서 국적, 세대, 장르, 성별 등의 구분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페스티벌이 2030세대만 즐기는 행사로 소개되지 않았으면 해요. 다양한 사람들, 모르는 사람들과 경계를 허물고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 허용되는 사회적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페스티벌이 해야 한다고 봅니다.” (전문은 플랫에서 읽어보기)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은 이러한 철학을 말로만 드러내지 않습니다. 지역주민을 존중하는 공간 구성과 아이들을 고려한 시설 등 곳곳의 세심한 장치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더라고요.

연못가 피크닉 존의 해질무렵
페스티벌의 티켓 판매량은 보통 뮤지션 라인업이 좌지우지합니다. 그런데 라인업과 무관하게 페스티벌 자체에 두터운 팬층을 보유한 곳은 단연코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일 거예요. 새롭게 발굴하는 뮤지션 라인업에 대한 신뢰도는 물론, 무대 밖에도 ‘남녀노소’ 놀거리가 많거든요.
아이 또는 부모님과 함께 새로운 경험을 해 보고 싶다면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을 가보시는 건 어떨까요? 페스티벌 입문자에게 적극 추천해요.
페스티벌 두 곳을 소개하려고 했는데,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이야기만으로 뉴스레터가 길어졌어요. 다음 편에 해외 페스티벌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다음 편엔 페스티벌의 장애인 접근성 이야기도 담아올게요!